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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스꼴라 20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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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장실에서 곤을 만났습니다. 곤은 목소리도 작고 밥도 아주 천천히 먹는, 올해 열 아홉 된 우리 학교 떠별(로드스꼴라에서 학생을 부르는 말)입니다. 저는 어쩐지 장난이 치고 싶어져서 곤아, 너는 왜? 이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 거 같아?” 라고 농을 걸었습니다. 곤은 살짝 웃으며 왜 리뷰를 안 썼니?” 라고 대답했습니다. “? 어떻게 알았지?” 제가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하자 곤이 배시시 웃습니다. “그래, 리뷰는 왜 안 올렸니?” “일찍 빌리려고 했는데 도서관에 늦게 가서요.” “그래? 읽은데까지는 재미있었니?” “” “다행이네. 책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어?” “,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끼리 싸우나 뭐 그런.” “그게 무슨 얘기야?” 조금 흥미로워져서 저는 팔짱을 끼고 곤을 바라보았습니다. “, 자본과 국가, 같은 거대한 것들이 우리를 음, 재난 상황에서 왜 남자와 여자는, , 잘 이야길 못 하겠어요.” 곤이 곤란한 표정을 짓습니다. “, 뭔가 핵심적인 이야길 할 거 같은데. 조금 있다 수업 시간에 잘 정리해서 이야기 해보자.” “, 그런데요 어딘?” 곤이 저에게 질문을 하는 건 흔치 않은 일이라 무슨 말일까 곤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딘은 어떻게 그렇게 이야길 잘 하세요?” , 곤이 이런 말을 하다니. 저는 어쩐지 곤이랑 친해진 거 같아 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속삭였습니다. “, 이건 비밀인데 너한테만 알려줄게. 내가 너보다 30년도 더 넘게 살아서 그래.”

 

요즘 저는 학생들과 책읽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수업 시간엔 그 리뷰를 바탕으로 서로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올 하반기에 읽은 책은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28> <개미제국의 발견> <랩걸>입니다. 제각각 토론하고 논의할 수 있는 지점이 풍부하고 흥미진진한 책들이라 떠별들도 매주 잘 읽어오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삶의 태도에 대하여, 어떤 날은 새로운 시대의 윤리와 도덕을 만들어나갈 주체에 관하여, 어떤 날은 동물권에 대하여, 어떤 날은 인류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에 살았던 생물종의 강인함과 유연함에 대하여 나름 열띤 이야기와 공방을 이어갑니다. 곤과 저 이야기를 한 건 정유정 작가의 <28>에 관한 토론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인수공동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 코로나 시대를 겪는 우리들의 현재와 맞물려 할 이야기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상반기엔 원 스트레인지 락 One Strange Rock’ 이라는 10부작 다큐멘터리를 매주 한 편씩 보고 토론하는 수업을 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인간탑쌓기를 하는 내용이 나온 회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곤의 차례가 되자 예의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소통을 해 본 적이 없어요. 협동의 경험도 없어요.” , 저렇게 심각한 말을 저토록 조단조단 하다니. 저는 조금 충격적이고 놀라워서 다른 학생들의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만 아뿔사 모두 마스크를 한 상태여서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수업이란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표정을 잃은 수업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 날 이후 일주일 내내 곤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그 수업 시간이 되었을 때 저는 곤에게 말했습니다. “, 곤은 매주 리뷰를 꼬박꼬박 쓰잖아요. 그럼 그 글을 읽고 나와 떠별들은 아, 곤은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하고 알게 돼요. 곤도 다른 떠별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알게 되지요? 이것도 소통의 일환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리고 곤은 지금까지 이 수업 시간에 한 번도 결석한 적이 없어요. 내가 이야기를 할 때나 다른 떠별들이 의견을 발표할 때 아주 주의깊게 들어요. 이것도 협동이지요. 그러니까 곤은 소통도 하고 협동도 할 줄 아는 사람인 거지요. 곤이 생각하는 소통과 협력이 조금 더 긴밀하고 조금 더 드라마틱한 것이라면 학교를 다니는 동안 연극 같은 걸 해보면 좋을 거 같기도 해요.”

 

 

2.

로드스꼴라를 시작한 지 12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저희 교사들에게 떠별들이 너무 똑똑해졌어. 1기들이 4학기 때나 쓰는 글을 11기들은 첫 학기에 써내. 놀라워.” 라고 말하곤 합니다. 실제로 떠별들의 인식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된 듯 합니다. 왜일까, 곰곰 생각해봤더니 정보의 양과 비례하는 거 같습니다. 떠별들이 습득하는 정보의 양은 1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해졌습니다. 종종 젊은 뮤지션들이 해내는 성취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저토록 멋진 작업을 해내지? 그에 대한 힌트도 유튜브에서 찾습니다. 유튜브에는 그야말로 세상의 모오든 음악이 다 있습니다. 아프리카 음악이든 몽골 음악이든 티벳 음악이든 아랍 음악이든 18세기 음악이든 19세기 음악이든 원하는 모오든 음악이 다 있습니다. 교재가 저토록 광범해지고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 저토록 용이하니 원하기만 한다면 그야말로 얼마든지 예술적 자산으로 만들 수가 있지요.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모오든 강의가 유튜브 안에 다 있습니다. 노자든 기후변화든 생물다양성이든 물리학이든 의학이든 원하는 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굳이 학교를 다니지 않아도 마음껏 강의를 듣고 스스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묻게 됩니다. 학교, 는 왜 다녀야 하지? 학교에서는 무얼 해야 하지? 학교는 필요한가?

 

로드스꼴라가 이 고민을 시작한 건 3-4년 전부터입니다. 세상은 변화, 전환 이라는 말을 넘어 개벽에 가깝게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AI 사물인터넷 기후변화 유전자가위 소셜네트워크 재난 이주 난민 라이프3.0.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기도 전에 다른 환경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신석기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가장 놀라운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러니 매해 다른 고민을 해야 했습니다. 한 해도 같은 수업 기획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길별들의 고민은 이것이었습니다.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떠별도 길별도 이 시대를 살아나갈 수 있을까 혹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종종 회의 중에 길별들에게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재난 상황이 왔다고 가정해봅시다. 이곳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 30명의 청소년들을 데리고 여기서 탈출해서 바이칼 쪽으로 가야해. 그럼 우리 떠별들에겐 무얼 가르쳐야 할까요? 비장한 얼굴로 길별들이 한 마디씩 합니다.

 

방향을 가늠할 줄 알아야 하고

불도 피울 줄 알아야 하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스스로 구하고 만들 줄 알아야 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고 무엇보다

갈등을 해결할 줄 아는 마음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다른 그룹과 연대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러니

손은 날렵하고

발은 용맹하고

마음은 담대하고

눈은 다정하고

정신은 명랑해야,

좋아 그걸 베이스로 하는 공부를 해봅시다.

 

지난 3-4년 로드스꼴라가 했던 공부의 내용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바람을 가르며 뛰고 달리고 구를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춤을 추고 노래하는 인간은 어떤 절망의 순간도 이겨낸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를 이야기로 바꾸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축적되어 인공지능의 세계가 구축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함께 만드는 생각의 방향이 떠별과 길별의 미래로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도 선명해졌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동안 떠별들도 변했습니다.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정보가 하루에도 몇 만개씩 머리에 들어가니 와글와글 북적북적 머릿속은 복잡하고, ‘좋아요의 갯수에 마음의 희비가 엇갈리고, 연결하면 할수록 알 수 없는 고립감이 느껴지는 기이한 공간에 놓여지면서 어떤 무력감과 우울에 시달리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정보를 이야기로 만들어낼 수 있는 힘, 이 없다면 정보에 잠식당하고 마는 것이지요. 로드스꼴라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길별이 물어왔습니다. 왜 점점 떠별들이 약해질까요? 관계의 힘이 느슨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함께 추측해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아니면 갈 곳이 없었지요. 어떻게든 이곳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 했습니다. 싸우기도 하고 질투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때때로 상처를 주고 받으며 관계를 다듬고 보듬어 우리를 만들어 냈지요. 요즘은 이곳을 조금 쉽게 포기하고 저곳으로 갑니다. 온라인의 세계지요. 그곳에서는 오프라인의 세계에서만큼 치열하게 맞붙어 관계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불편하면 바로 삭제하거나 탈퇴해도 되니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노오력을 아무래도 덜 하게 되겠지요. 고립은 우울을 불러오는 가장 대표적인 파장입니다. 갈등과 경쟁이 없는 세계에서는 협동과 연대도 사라지게 됩니다. 인류의 진화는 함께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져 왔습니다. 충돌과 다툼이 도약의 다른 이름임을 배울 수 있는 곳이 학교일 것입니다.

 

 

3.

모두들 걱정을 했습니다. 여행을 못 가는 여행학교, 지속가능해? 학교의 안녕을 물어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여행학교에 대해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는 학교인데 사방으로 길이 막힌 한 해이긴 했습니다만 여느 학교나 마찬가지로 때때로 우왕좌왕 때때로 좌충우돌 그러나 유연하고 의연하게 시대를 돌파하는 중입니다. 딱 코로나의 형태로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비슷한 재난이 올 거라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터라 크게 당황하지 않고 대면과 비대면을 오가며 배움과 여행을 이어나갔습니다. 작년말부터 이어진 로드스꼴라 3.0’에 관한 회의의 결론도 거의 지어진 상황입니다. 로드스꼴라는 향후 계속 청소년 청년과 함께 시대를 읽어내고 창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내며 우정과 연대와 협력의 배움터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로드스꼴라 3.0의 주제는 크게 두가지입니다.

 

대이야기의 시대, 인간의 서사를 넘어 만물의 서사로! 이것이 우리들의 첫 번째 주제입니다. 물질이 개벽하는 시대입니다. AI 크리스퍼 기후위기는 이전 인류가 경험해본 적 없는 낯선 시대를 불러올 것입니다. 그로 인한 재난과 난민과 동물들의 죽음과 멸종은 암담한 미래를 예측하게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각성을 하는 계기도 되고 있습니다. 아마존의 밀림과 공장식 축산과 아프리카 돼지열병과 내 식탁과 기후위기가 이토록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시대라니오. 많이 배운 사람도 적게 배운 사람도 나이 어린 사람도 나이 많은 사람도 여자도 남자도 이 개벽의 시대에는 동등하게 창발적입니다. 고금과 동서의 이야기를 읽어내며 옛사람들이 위기를 건넌 지혜를 얻고 과학과 문학을 아울러 공부하며 바닷속과 우주를 동시에 유영할 일입니다. 작고 사소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내 이야기부터 나무와 거북이와 돼지와 벌과 독수리와 코끼리의 이야기까지, 좁쌀 한 알에 들어있는 우주의 이야기와 상상을 넘어서는 상상의 이야기까지 함께 하는 대이야기의 시대를 펼쳐볼 일입니다. 인간의 서사를 넘어 만물의 서사를 함께 그려나갈 때 공존과 공생과 공명의 울림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인간의 이야기와 인간 아닌 것들의 이야기가 만나 새로운 이야기의 길을 만들어낼 것이고 그 과정에 몸 없는 존재와도 기꺼이 함께 살 새로운 윤리와 도덕과 질서도 만들어지겠지요. 청소년들은 이미 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지구세대Earth Generation에게 더 많은 발언권을 주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 로드스꼴라 3.0이 다루는 주요한 주제는 와일드 라이프Wild Life & 재난의 시대 삶의 기술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 는 감각을 상실하면서 비롯된 듯 합니다. 우리는 지구에 살고 있고 무엇보다 태양에너지의 자장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달과 바다와 강과 나무와 꽃과 바람과 나비와 새와 고래와 개미와 함께 살고 있다는 자각이 절실한 때입니다. 우리는 이 감각을 얼쓰쉽Earth-ship 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저절로 익혀지던 얼쓰쉽Earth-ship이 요즘은 공부하여 얻어지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우리는 흙에 발을 딛고 바닷속을 헤엄치며 지구라는 행성에 함께 사는 이웃들의 다양한 표정을 곰곰이 살펴볼 작정입니다. 자연을 독점하며 벌어진 불균형이 생명 뿐 아니라 그 토대마저 흔들고 있다는 점을 자각하여 더불어 살 줄 아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해볼 요량입니다. 농사도 짓지만 수렵과 채취도 하며 자연 속의 일부로 내가 존재할 때 우리의 삶이 빛나고 아름답다는 것을 몸으로 익혀 알아가고자 합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결과가 불러올 대재난의 시대를 대비하여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아는 삶의 기술도 배울 생각입니다. 현상을 일으키는 본질을 볼 줄 아는 눈과 자리이타自利利他,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곧 나를 이롭게 하는 것임을 깨달아,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뭇생명을 살리는 사람. 이 되는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 가치를 다변화하는 것, 얼쓰쉽Earth-ship 의 가장 주요한 테제입니다.

 

4.

글쓰기도 하겠지만 훌라도 추겠지요. 책읽기도 하겠지만 프리다이빙도 하겠지요. 바느질도 하겠지만 셀프디펜스도 하겠지요. 기차도 타겠지만 무동력 여행도 하겠지요.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곳, 함께 밥을 먹으며 게임 이야기나 드라마 이야기를 침 튀기며 할 수 있는 곳, 시시껄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대는 친구들이 있는 곳, 멋진 생각을 함께 실현할 공동작업자가 있는 곳, 졸다 깨다 졸다 깨다 들어두었던 이야기가 그래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고 격려해주는 길별이 있는 곳, 세대를 아우르며 소통하고, 도모하고, 협동하고, 공조할 수 있는 장, 로드스꼴라 3.0을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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